서론은 논문의 첫인상이다. 독자는 서론을 읽으며 “이 연구가 내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한다. 리뷰어는 서론에서 연구의 방향과 깊이를 가늠하고, 에디터는 서론의 명료함으로 논문의 완성도를 예측한다. 그래서 서론은 단순히 배경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연구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장이다.
좋은 서론은 독자를 자연스럽게 연구의 세계로 초대한다. 넓은 맥락에서 시작해 점차 구체적인 질문으로 좁혀가며, 마지막에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라고 선언한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흐를 때, 독자는 Methods로 넘어가기 전에 이미 연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이번 장에서는 서론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어떤 순서로 생각하며,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고 닫을 것인가를 다룬다. 특히 오믹스 연구처럼 데이터가 복잡하고 방법론이 전문적인 분야에서, 서론은 독자가 연구의 큰 그림을 잃지 않도록 돕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서론은 논문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장면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처럼, 서론은 독자에게 “왜 이 연구가 필요한가”를 설득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이런 연구들이 있었다”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problem statement)과 연구의 맥락(context)을 설정하는 장이다.
서론의 핵심 목적은 세 가지다:
서론은 독자의 머릿속에 ‘이 논문이 어디로 가는가’를 심어주는 지도다. 독자가 Results를 읽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론에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실제 논문에서 이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2018년 Science에 발표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비부호화 변이 연구 (An et al. 2018, Science)의 서론은 이 세 가지 요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맥락 제공: 서론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가 높은 유전율을 보이는 신경발달장애이며, 수백 개의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기존 연구들이 단백질 코딩 변이를 통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음을 인정하며, 이 분야의 중요성을 확립한다.
공백 제시: 그러나 단백질 코딩 변이만으로는 ASD의 유전적 위험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인간 유전체의 98%를 차지하는 비부호화 영역이 유전자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만, ASD에서 비부호화 변이의 기여도는 체계적으로 평가되지 않았다. 특히 기존의 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 접근법은 흔한 변이에 집중했고, 희귀한 비부호화 변이의 역할은 불분명했다.
목적 선언: 이 연구는 whole-genome sequencing (WGS) 데이터를 이용해, 비부호화 영역에서 드 노보 변이와 inherited 변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Category-Wide Association Study (CWAS)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해, 기능적으로 관련된 비부호화 영역들을 카테고리로 묶어 통계적 검정력을 높인다. 이를 통해 프로모터, 인핸서, 그리고 뇌 특이적 조절 영역에서 ASD와 연관된 변이를 식별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논리적으로 연결될 때, 독자는 “그래서 이 연구를 해야겠구나”라고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서론이 단순히 배경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질문의 필연성을 구축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많은 학생들이 서론을 쓸 때 막막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생각하기(thinking)와 작성하기(writing)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과정은 서로 다른 단계이며,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각하기는 연구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다. 이것은 책상 앞에 앉아서만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캠퍼스를 걷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혹은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연구실 동료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면서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게 뭘까?”라고 물어볼 수도 있고, 미팅에서 지도교수의 질문에 답하다가 새로운 방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생각은 물과 같아서, 누구도 제약할 수 없고, 언제 어느 순간에나 할 수 있다. 손흥민이 홈런을 치고, 오타니가 골을 넣는 스포츠 중계를 볼 때도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무엇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가?”, “왜 이 질문이 중요한가?”, “내 연구가 기존 연구와 어떻게 다른가?”를 자유롭게 고민한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노트에 낙서하듯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케치하듯이 생각을 풀어내면 된다. 이 과정은 엄밀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이미 연구된 것들과 질문이 중복될 수도 있다. 그런 질문들은 나중에 문헌 조사를 통해 걸러질 것이다. 막상 쓰려고 하면, 특히 첫 논문을 쓸 때는 긴장하거나 너무 부담을 느껴서 생각이 굳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작성하기는 그 생각을 논리적 서사로 엮는 과정이다. 말 그대로 MS Word를 켜고 문서를 만드는 단계다. 이때부터는 그간 찾은 참고문헌이나 서론의 기본적인 양식들을 맞춰서 작성한다. 처음에는 개조식으로 bullet point로 구조를 잡아서 작성한다. 역삼각형 구조(아래에서 자세히 다룬다)를 고려해서, 첫 문단은 무엇을 다룰 것인지, 두 번째 문단은 어떤 공백을 제시할 것인지, 마지막 문단은 연구의 목적을 어떻게 선언할 것인지를 먼저 정리하는 것이다.
구조가 잡히면 그다음에는 문장으로 작성한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순서로 정보를 배열하고, 각 문단이 다음 문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연결한다. 전문 용어를 적절히 정의하고, 인용을 배치한다. 첫 작성은 AI 도구를 사용해서 해봐도 된다. 생각을 정리한 bullet point를 AI에 넣어 초안을 만들고, 그것을 다듬어가는 방식도 효율적이다. 다만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제대로 담겼는지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서론은 생각의 흔적을 문장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먼저 충분히 생각하고, 그 다음에 쓰기 시작하라.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장을 만들려고 하면, 글이 산만해지고 논리가 약해진다. 반대로 생각은 충분히 했는데 쓰기를 미루면, 그 생각들이 흩어져 버린다. 두 과정 모두 중요하고, 각각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서론의 가장 효과적인 구조는 역삼각형(inverted pyramid)이다. 넓은 주제에서 시작해 점차 좁혀가며, 마지막에는 구체적인 연구 질문에 도달하는 형태다. 이 구조는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래서 이 연구가 왜 필요한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기본적인 세 문단 구조:
주제의 중요성과 학문적·사회적 의미를 제시한다. 독자가 “왜 이 주제가 중요한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시: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affects 1-2% of children worldwide and presents significant challenges for affected families and healthcare systems. Understanding the genetic architecture of ASD is crucial for early diagnosis, intervention, and the development of targeted therapeutics.”
이 문단에서는 연구 주제가 다루는 현상의 규모를 제시하고, 사회적·임상적 중요성을 언급한다. 독자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의 간극을 설명한다. 이 문단이 서론의 핵심이다.
예시:
“While exome sequencing studies have identified over 100 high-confidence ASD risk genes, these account for only 10-20% of cases. The majority of genetic liability remains unexplained. Recent studies suggest that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may contribute substantially to ASD risk, but systematic analyses integrating cell-type-specific regulatory information are lacking.”
이 문단에서는 기존 연구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여전히 남은 질문을 명확히 한다. “무엇을 모르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공백을 제시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기존 연구를 폄하하지 않는다. “Previous studies were flawed”가 아니라 “remain incompletely understood”로 표현한다. 그리고 너무 넓은 공백이 아니라, 내 연구로 답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백을 제시해야 한다.
때로는 공백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도메인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연구가 지식의 공백과 방법론적 공백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기존 연구들이 특정 측면만 분석했다는 지식의 한계와, 적절한 분석 방법이나 데이터가 없었다는 방법론적 한계가 함께 존재하는 경우다. 이럴 때는 공백을 두 문단으로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 첫 번째 공백 문단에서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두 번째 공백 문단에서는 “어떤 리소스나 방법이 부족했는가”를 다룬다. 그러면 서론이 세 문단이 아니라 네 문단이 된다. 이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역삼각형의 논리적 흐름이 유지되는가이지, 문단의 개수가 아니다.
실제 논문에서 이 두 가지 방식을 비교해보자. 2018년 Science 논문 (An et al. 2018, Science)은 전형적인 세 문단 구조를 사용한다. 첫 문단에서 자폐의 유전적 복잡성과 비부호화 영역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두 번째 문단에서 기존 연구의 한계(비부호화 변이의 역할이 불분명함)를 하나의 통합된 공백으로 제시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연구의 목적과 주요 발견을 제시한다. 공백이 하나의 큰 주제(비부호화 영역의 미탐색)로 수렴하기 때문에, 한 문단으로 효과적으로 정리된다.
반면 2020년 Cell Reports 논문 (Werling et al. 2020, Cell Reports)은 네 문단 구조를 사용한다. 첫 문단에서 뇌 발달의 복잡성과 시공간적 조절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발달 과정에서의 유전자 발현 변화가 신경정신질환과 연관된다는 지식의 공백을 제시한다. 세 번째 문단에서는 eQTL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특히 발달 중인 뇌에서의 eQTL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리소스의 공백을 다룬다. 네 번째 문단에서 BrainVar 리소스를 소개하며 연구의 목적을 밝힌다. 여기서 공백이 두 차원으로 나뉜다. 발달 과정에서 유전자 조절이 질병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라는 생물학적 지식의 공백과, 발달 중인 뇌의 eQTL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리소스/방법론적 공백이다. 이 두 공백이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문단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명확하다.
어느 방식이 더 나은가? 그것은 연구가 답하려는 질문의 구조에 달려 있다. 만약 하나의 명확한 공백을 다룬다면 세 문단이 깔끔하다. 하지만 두 개의 독립적인 공백을 다루거나, 공백의 층위가 복잡하다면 네 문단이 더 명료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각 문단이 논리적으로 연결되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다.
본 연구의 목표, 질문, 접근법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독자가 “이 논문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한다.
예시:
“In this study, we performed whole-genome sequencing of 2,000 ASD families to systematically evaluate the contribution of noncoding variants. We integrated cell-type-specific chromatin accessibility data from developing human brain to prioritize functional regulatory variants. Our analysis reveals that noncoding variants in cortical neuron enhancers are significantly enriched in ASD probands and contribute to phenotypic severity.”
이 문단에서는 연구 디자인의 핵심을 간단히 소개하고, 사용한 데이터와 방법의 독창성을 강조한다. 주요 발견을 미리 언급할 수도 있다(저널에 따라 다름).
이 세 문단(혹은 네 문단)의 흐름이 매끄러울 때, 독자는 자연스럽게 연구의 논리를 따라오게 된다. 각 문단이 다음 문단의 동기가 되도록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첫 문단을 읽고 나면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나?”라는 질문이 생기고, 공백 문단을 읽고 나면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기고, 마지막 문단이 그 답을 제시하는 구조다. 이것이 역삼각형의 힘이다.
서론은 질문을 던지는 장이고, 결과와 토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장이다. 좋은 논문은 서론에서 흩뿌린 작은 단서(떡밥)를 후반부에서 자연스럽게 회수한다.
예를 들어, 서론에서 이렇게 썼다면:
“However, it remains unclear whether noncoding variants show cell-type-specific effects during brain development.”
결과 섹션에서는:
“We found that regulatory variants are enriched in cortical excitatory neurons specifically during mid-fetal development (Figure 3).”
토의 섹션에서는:
“Our findings demonstrate that noncoding ASD variants exhibit strong cell-type and developmental stage specificity, suggesting that…”
“문제 제기 → 탐색 → 회수”의 구조를 통해 논문 전체의 리듬이 완성된다. 서론에서 던진 질문이 결과와 토의에서 제대로 회수되지 않으면, 독자는 “그래서 이 연구가 원래 질문에 답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떡밥을 회수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MBTI가 N(직관)과 P(인식) 성향이 높은 학생들은 서론에서 떡밥을 과도하게 뿌리는 경향이 있다. A, B, C 순서로 주제를 나열해야 하는데, 서론에서 세상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고 한다.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부터 시작해서 진화적 관점, 질병의 역학, 치료법의 미래, 사회적 함의까지… 읽다 보면 눈알이 빠질 것 같다. 사실 그런 나열들은 정말 재미있고, 학생의 지적 호기심과 배경 지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론은 리뷰 논문도 아니고 위키피디아가 아니다.
서론은 글로 작성되지만, 사실 제품 브로셔와 같다. 어떤 내용을 당신이 읽을 것이고, 어떤 경로로 생각의 흐름이 흐를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모든 주제는 논문의 어딘가에서 다시 다뤄져야 한다. 만약 서론에서 “유전자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면, Results에 네트워크 분석이 있어야 하고, Discussion에서 그 네트워크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만약 서론에서 “발달 시기별 차이”를 언급했다면, 결과에서 그 차이를 보여주는 Figure가 있어야 한다.
떡밥은 반드시 회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왜 이 이야기를 꺼냈지?”라고 혼란스러워한다. 리뷰어는 더 직설적이다. “서론에서 언급한 XX는 결과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이 부분을 삭제하거나, 결과를 추가하라”는 코멘트를 남긴다.
학생 연습: 서론을 쓴 후, 다음 질문에 답해보라. 서론의 각 문단을 읽으며, 그 문단에서 제기한 질문이나 언급한 개념이 논문의 어디에서 다시 등장하는지 추적해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서론에서 던진 핵심 질문은 무엇인가? 그 질문은 Results의 어느 Figure에서 답해지는가? Discussion에서 그 질문을 다시 언급하고 해석하는가? 만약 서론에서 언급했지만 Results나 Discussion에 나타나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서론에서 불필요하게 언급했거나, 결과 분석이 미흡한 것이다.
이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다면, 서론을 다시 다듬거나 결과의 구성을 조정해야 한다. 때로는 서론을 줄이는 것이 답이고, 때로는 결과를 보강하는 것이 답이다. 중요한 것은 서론에서 던진 공과 Results-Discussion에서 받는 공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예시: 내가 지도한 학생 중 한 명은 서론에서 “유전자 네트워크의 허브 유전자가 자폐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서론의 2/3을 할애해서 네트워크 이론의 중요성을 설명했고, 허브 유전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결과에서는 개별 유전자의 변이 빈도만 분석하고, 네트워크 분석은 보조자료(Supplementary Figure)에만 포함시켰다. 메인 Figure에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 그림도 없었다. 리뷰어는 이 불일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서론에서 네트워크를 강조했는데, 왜 메인 결과에는 없는가? 이것은 연구의 초점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네트워크 분석을 메인 Figure로 옮기고, Discussion에서도 네트워크 관점의 해석을 추가해서 서론의 질문에 직접 답하도록 수정했다. 논문은 그제야 리뷰를 통과했다.
서론을 쓸 때는 욕심을 부리고 싶은 유혹이 크다.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고, 연구 주제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 싶다. 하지만 좋은 서론은 선택과 집중이다. 내 연구가 답할 수 있는 질문만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Results와 Discussion에서 명확히 제시하는 것. 그것이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는 법이다.
서론의 첫 문장은 독자의 ‘첫 3초’를 사로잡아야 한다. 이 문장이 독자를 연구의 세계로 초대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좋은 첫 문장의 조건:
좋은 예시:
“Human genetic variation shapes individual differences in health, behavior, and disease susceptibility.”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is a highly heritable neurodevelopmental condition affecting 1 in 54 children.”
“The noncoding genome, comprising 98% of human DNA, harbors thousands of regulatory elements that control gene expression.”
피해야 할 첫 문장:
첫 문장을 쓰는 실용적 방법:
‘왜 이 문장을 써야 하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문장은 습관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서론은 단순히 연구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독자의 인지적 색인(cognitive index)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즉, 독자가 논문을 읽는 동안 특정 개념을 계속 떠올릴 수 있도록 핵심 용어를 초기 문단에 배치해야 한다. 이것은 독자의 머릿속에 개념의 지도를 그려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오믹스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들이 있다. 희귀 변이(rare variant), 세포 유형 특이성(cell-type specificity), 유전자 조절(gene regulation), 드 노보 변이(de novo mutation), 인핸서(enhancer) 같은 용어들이다. 이런 용어들을 서론 초반에 정의하고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 독자는 Results를 읽을 때 이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좋은 정의는 간결하면서도 맥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Rare variants, defined as genetic variants with minor allele frequency <1%, are increasingly recognized as important contributors to complex disease risk”라고 쓰면, 독자는 희귀 변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를 동시에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Cell-type-specific regulatory elements, such as enhancers and promoters, control when and where genes are expressed during development”는 세포 유형 특이성이라는 개념을 예시와 함께 설명한다.
피해야 할 방식도 있다. 정의 없이 전문 용어를 남발하면 독자가 길을 잃는다. “We analyzed eQTLs in iPSC-derived neurons…”라고 쓰면, eQTL이 무엇인지 모르는 독자는 그 순간 멈춰 선다. 반대로 너무 교과서적인 정의도 문제다. “An enhancer is a regulatory DNA sequence that increases the transcription of target genes…”는 정확하지만 논문의 흐름을 끊는다. 논문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의는 연구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서론에 같은 개념을 여러 용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regulatory element, regulatory region, regulatory sequence, cis-regulatory element를 모두 다른 용어인 것처럼 사용한다. 혹은 de novo mutation과 spontaneous mutation을 구분 없이 섞어 쓴다. 그러면 독자나 리뷰어는 주요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들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라는 혼란이 생긴다.
서론에서는 주요 개념을 빠르게 상대방의 머릿속에 남겨서, 뒤에 나올 내용을 쉽게 읽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요 용어들을 명확히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줄임말로 야무지게 포장해줘야 한다. “We refer to these as regulatory variants (RVs) throughout this paper”라고 선언하면, 이후 논문 전체에서 RV라는 약어를 일관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용어를 남발하거나, 너무 많은 줄임말을 등장시키면 안 된다. 서론 첫 페이지에 약어가 10개 이상 등장하면, 독자는 약어를 기억하는 데 에너지를 다 쓰고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줄임말 용어들을 너무 많이 등장시키면, 문장의 호흡이 길어져서 독자가 글을 읽기가 어렵다. “We performed CWAS on RVs in TF-binding CREs using scATAC-seq data from iPSC-derived ExNs”라는 문장은 기술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약어 때문에 독자가 숨이 막힌다.
글은 글이지만, 제품의 브로셔와 같다. 글에는 공간적 흐름이 있다. 독자의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정보를 흡수한다. 그 흐름 속에서 독자가 멈춰야 하는 지점(새로운 개념의 정의)과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 지점(이미 정의된 개념의 반복)을 설계해야 한다.
실용적인 전략을 제안한다. 서론 초안을 쓴 후, 핵심 용어 5-7개를 리스트로 정리한다. 각 용어가 서론 어디에서 처음 등장하는지 확인한다. 처음 등장할 때 한 문장으로 맥락적 정의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후 Results와 Discussion에서 그 용어가 일관되게 사용되는지 확인한다. 만약 서론에서 “regulatory variant”로 정의했다면, Results에서 갑자기 “regulatory mutation”으로 바꿔 쓰지 않는다. 용어의 일관성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가장 기본적인 배려다.
용어를 정의하는 것은 독자를 존중하는 일이다. 전문가 독자에게는 확인의 기회를, 비전문가 독자에게는 이해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용어 정의는 저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용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론의 마지막 문단은 논문 전체의 방향을 닫는 자리이지만, 저널이나 분야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다.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일부 저널(특히 Cell, Science, Nature 등 고영향력 저널)은 서론 마지막에 연구의 주요 발견까지 미리 언급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예시:
“In this study, we integrated single-cell chromatin accessibility data with whole-genome sequencing from 2,000 ASD families. We identified 45 noncoding loci significantly enriched for rare variants in cortical neuron enhancers. These variants are associated with increased ASD severity and converge on gene regulatory networks critical for early brain development.”
장점:
단점:
다른 저널(Nature Communications, 많은 의학 저널)은 서론에서 연구의 목적과 접근법까지만 밝히는 방식을 허용한다.
예시:
“Here, we aim to investigate how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contribute to ASD risk. We integrate cell-type-specific epigenomic data with whole-genome sequencing to identify functional variants in neurodevelopmental regulatory elements.”
장점:
단점:
두 접근 모두 허용되며, 핵심은 서론의 마지막 문장이 독자에게 이 논문이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다.
실용적 조언:
내 개인적 선호: 나는 주로 스타일 1을 사용한다. 독자가 논문의 주요 메시지를 서론에서 이미 이해하고, Results를 읽으며 “어떻게 이 결론에 도달했는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믹스 연구처럼 방법론이 복잡한 경우, 서론에서 큰 그림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독자에게 친절하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어떤 스타일을 선택하든, 서론 전체의 톤과 논리적 흐름이 자연스럽게 마지막 문단으로 이어져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헷갈려하는 질문이다. Introduction의 마지막 문단과 Abstract 모두 연구를 요약하는데, 왜 두 번 같은 내용을 쓰는 것처럼 느껴질까? 사실 두 섹션은 목적, 독자, 그리고 서술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Abstract는 논문 전체의 독립적인 요약이다. 독자가 Abstract만 읽고도 연구의 배경, 방법, 결과, 결론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 검색에서 Abstract만 표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Abstract는 논문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Abstract의 구조 (보통 200-250단어):
Abstract 예시: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is highly heritable, yet the genetic architecture remains incompletely understood. [배경] Here, we performed whole-genome sequencing of 2,000 ASD families to systematically evaluate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목적] We integrated cell-type-specific chromatin accessibility data from developing human brain and applied a novel Category-Wide Association Study (CWAS) framework. [방법] We identified 45 noncoding loci significantly enriched for rare variants in cortical neuron enhancers (FDR < 0.1). These variants were associated with increased symptom severity (β = 0.42, P = 3.2 × 10⁻⁵) and converged on 12 gene regulatory networks critical for early cortical development. [결과] Our findings demonstrate that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contribute substantially to ASD risk and highlight the importance of cell-type-specific analyses in psychiatric genomics. [결론]
반면 Introduction의 마지막 문단은 Abstract를 읽은 독자가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는 준비 단계다. Abstract는 이미 읽었다고 가정하고, 더 구체적인 맥락과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의 역할:
같은 연구의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 예시:
To address these gaps, we performed whole-genome sequencing of 2,000 simplex ASD families and integrated single-cell chromatin accessibility profiles from human fetal cortex spanning 8-24 post-conception weeks. Unlike previous genome-wide association studies that focused on common variants, we developed a Category-Wide Association Study (CWAS) framework to systematically test functional noncoding categories for enrichment of rare de novo and inherited variants. This approach allowed us to identify cell-type- and developmental-stage-specific regulatory elements contributing to ASD risk. We discovered that rare variants in cortical excitatory neuron enhancers are significantly enriched in ASD probands and that variant burden in these regions correlates with clinical severity. These findings provide the first systematic evidence that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particularly those active during early cortical neurogenesis, play a substantial role in ASD etiology.
| 측면 | Abstract |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 |
|---|---|---|
| 독자 가정 | 논문을 처음 보는 사람 | 서론 전체를 읽은 사람 |
| 맥락 의존성 | 독립적 (논문 없이도 이해 가능) | 의존적 (서론의 공백 제시를 전제) |
| 길이 | 200-250단어 (제한 있음) | 1-2 문단 (더 자유로움) |
| 방법 서술 | 간략 (“WGS 수행”) | 구체적 (“2,000 simplex families”) |
| 결과 서술 | 핵심 숫자 위주 | 결과의 의미 강조 |
| 시제 | 주로 과거형 | 과거형 + 현재형 혼합 |
| 톤 | 객관적, 중립적 | 설득적, 연결적 |
1.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에서만 언급할 내용:
2. Abstract에서만 언급할 내용:
3. 두 곳 모두 언급하되 방식을 다르게:
데이터 설명:
방법론:
주요 발견:
실수 1: Introduction을 Abstract처럼 쓰기
❌ 나쁜 예:
“We performed WGS. We found 45 loci. These loci are important.”
✅ 좋은 예:
“To systematically evaluate noncoding contributions to ASD, we performed WGS of 2,000 simplex families—the largest collection of family-based WGS data with deep phenotyping. This dataset, combined with developmental single-cell atlases, enabled us to discover that rare regulatory variants in early cortical neurons…”
차이: 나쁜 예는 Abstract의 압축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왔다. 좋은 예는 서론의 공백(“noncoding contributions”)을 언급하고, 데이터의 독특함(“largest collection with deep phenotyping”)을 강조하며, 발견의 의미(“enabled us to discover”)를 연결한다.
실수 2: Abstract를 Introduction처럼 쓰기
❌ 나쁜 예:
“To address the gap in understanding noncoding variants, which has been a longstanding challenge in the field as noted by previous reviews, we…”
✅ 좋은 예:
“Here, we performed WGS of 2,000 ASD families to evaluate noncoding regulatory variants.”
차이: Abstract는 배경 설명이나 문헌 검토 없이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To address the gap”이나 “longstanding challenge” 같은 서론 스타일의 표현은 불필요하다.
실수 3: 같은 문장을 복사-붙여넣기
일부 학생들은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Abstract에 붙여넣는다. 이것은 게으름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두 섹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다.
해결법:
연습 1: 중복 체크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과 Abstract를 나란히 놓고, 다음을 확인하라:
연습 2: 독자 시점 전환
각 섹션을 읽고 위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지 확인하라.
Abstract와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은 같은 연구를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Abstract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전체 지형이고,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은 그 지형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다.
Abstract는 “이 연구가 무엇을 했는가”를 독립적으로 전달하고,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은 “왜 이 연구가 필요했고,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가”를 서론의 맥락 속에서 설명한다. 두 섹션 모두 연구를 요약하지만,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내용도 달라야 한다.
좋은 논문은 Abstract를 읽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독자가 Introduction을 읽으며 “이제 이해했다”고 느끼고, Results로 넘어갈 때 “어떻게 이 결과에 도달했는지 보고 싶다”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 여정의 두 중요한 지점이 바로 Abstract와 Introduction 마지막 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