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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논문 쓰기

10장. 당신의 첫번째 논문을 위하여

이 교재를 쓰기 전, 학생들이 여러가지 질문과 피드백을 주었다. 대부분을 챕터에 넣었는데, 몇가지 질문들이 남았다. 답을 남기기 위해, 이 장을 할애한다.


방향성의 설정

학생의 질문:

여러 논문을 작성할 때, 졸업 논문의 큰 방향성은 언제,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학위를 하는 학생에겐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대학원생은 두가지 논문을 적는다. 대학원 학위 졸업 논문과 연구 프로젝트에서 창발한 SCI 저널에 투고할 논문. 졸업 요건을 떠나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는 저널의 논문은 연구 커리어에 중요하다. 남궁석 선생님이 쓴 “과학자가 되는 방법 (이김 출판)”을 매년 신입생에게 선물한다. 책에 보면, 대학원생은 흡사 아이돌 가수 연습생과 같다고 비유한다. 나는 이 비유를 학생들에게 자주 전달한다. 연구실은 소속사와 같아서, 노래와 안무를 연습시켜주고, 아이돌이 되기 위한 연습생이 발표할 노래와 앨범 작업을 도와준다. 연구자의 논문은 가수의 앨범과도 같아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듯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한다. 첫번째 싱글이 나오는 것처럼 첫번째 논문을 쓴다.

아직 데뷔하지 않은 가수이기에, 얼마나 노래를 잘할지, 춤을 잘 출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연습생은 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JYP엔터테이먼트 소속의 연습생이 버블검 팝 장르를 하고 싶기에 거기서 연습을 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하고 싶으면, 안테나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소속사의 음악과 작품을 공유하며 성장한다.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은 그 연구실이 하던 오랜 기간의 생각과 작업들을 이어 받아, 자신의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다. 일면 수동적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론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찾고 해야한다. 대학원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A는 A다”라는 답을 맞추는 교육을 받다가, 어느 순간 세상에 “B를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무대에 오른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어렵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향을 바꾸는 본질적 도전이기도 하다.

석사생과 박사생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

석사과정의 대학원생은 약 18개월 동안 논문을 작성할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1저자로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 받기에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우리 연구실은 입학전에 주제를 선정하기를 석사 학생들에게 권유한다. 이렇게 하면, 연구실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와 연구 방향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

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은 약 3년동안 학위를 하게 되는데 (통합의 경우 5년), 이 시기동안 최소 2편의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 보통 정부 연구과제가 3년의 연구기간을 갖고 있기에, 연구과제와 학위 연구가 잘 맞물려 갈 수 있다. 이 과정동안 어떠한 주제를 발전시켜서, 본인이 떠날 먼 연구의 여정의 종자돈으로 마련할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큰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학생과 지도교수는 상시 고민하고 논의해야한다.


논문 작성의 타임라인

학생의 질문:

분석 단계, 작성 초반·중반·후반 등 단계별로 적절한 타임라인은 어떻게 잡는 게 좋을까요?

논문 작성에는 리듬이 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막막하지만, 데이터를 만지고 분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보이는” 순간이 온다. 나는 학생들에게 피겨 2개가 나올 때까지는 분석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피겨 2개라는 기준은 자의적이지만, 실용적이다. 보통 첫 번째 피겨는 메인 결과를 담는다. 두 번째 피겨는 그 결과를 뒷받침하거나 확장하는 내용이 된다. 이 두 개가 나오면, 연구의 뼈대가 서는 것이다. 그제야 “작성을 시작하지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학생들은 관성적으로 준비해야 할 작업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추가 분석이 필요한지, 어떤 레퍼런스를 더 찾아야 하는지 감이 온다.

분석 단계에서는 지도교수나 공동연구자들과 가능한 주기적인 미팅이 중요하다. 매주 혹은 격주로 만나서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방향을 조율한다. 혼자 분석하다 보면 터널에 갇힐 수 있는데, 정기적인 미팅이 그것을 방지해준다.

중반 단계에서는 논문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공동연구자들의 파트를 담는 것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못하는 실험이나 추가 데이터 분석을 첨부하는 것이 이득이 있을지 생각하여 시간을 잘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

후반 단계는 다듬기의 시간이다. 글을 매끄럽게 하고, 피겨를 다시 보고, 레퍼런스를 체크한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의 피드백이 중요한데, 이것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에디터와 리뷰어가 보는 것

논문을 투고하면, 에디터와 리뷰어라는 두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에디터는 우선 논문의 novelty를 본다. 이 연구가 해당 저널의 독자들에게 새로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저널의 스코프에 맞는가? 충분히 흥미로운가? 에디터는 보통 리뷰를 보낼 가치가 있는지를 빠르게 판단한다. 그래서 투고 후 며칠 내에 desk rejection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에디터는 수많은 논문을 처리해야 하기에, 첫인상이 중요하다. Abstract와 Introduction, 그리고 Main Figure들이 명확하고 설득력 있어야 한다.

리뷰어는 더 깊이 본다. 연구의 타당성, 방법론의 적절성, 결과의 해석, 그리고 한계점까지 꼼꼼히 본다. 리뷰어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작은 실수나 논리적 비약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리뷰어 코멘트는 때로 날카롭고, 때로 건설적이며, 때로는(솔직히) 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관문 모두 novelty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미 알려진 것”을 반복하는 연구는 통과하기 어렵다. 하지만 novelty가 꼭 혁명적일 필요는 없다. 기존 방법을 새로운 데이터에 적용하거나,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거나, 여러 조각을 잘 엮어서 새로운 insight를 주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


추천 리뷰어의 선정

학생의 질문:

추천 리뷰어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이 좋을까요?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자주 인용하는 논문들이 나온다. 가만히 보면, 공통적인 연구자들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1저자로 썼으나, 현재는 박사가 되었거나 독립연구자(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리스트를 5-7명 정도 확보하는 게 좋다.

추천 리뷰어를 선정할 때는, 이 사람이 내 연구를 어느 측면에서 (재밌게) 읽어줄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한 방법론을 개발한 사람, 우리가 연구한 질환이나 현상에 대해 오래 연구한 사람, 혹은 우리와 비슷한 데이터를 다룬 적이 있는 사람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단, 너무 가까운 사람(같은 기관, 같은 연구 네트워크)은 피하는 게 좋다. 에디터가 conflict of interest를 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유명한 big name을 추천하는 것도 양날의 검이다. 그들은 바쁘기에 리뷰를 안 할 수도 있고, 하더라도 매우 까다로울 수 있다.


동료의 피드백

연구실의 동료들에게 최소 2명 정도에게 작성 중인 원고(최종 버전이 아니어도 됨)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글은 결국 남에게 읽히면서 가치를 평가받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을 때 어떤 것에 집중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해보는 게 중요하다.

나와 가까운 연구주제를 하는 학생 1명, 그리고 먼 주제를 하는 학생 1명, 혹은 연차를 다양하게 선정하여 동료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다. 가까운 주제를 하는 동료는 기술적인 디테일을 잡아줄 것이고, 먼 주제를 하는 동료는 큰 그림과 전달력을 피드백해줄 것이다. 혹은 같은 학과의 동기에게 보여주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에 서로 밥도 자주 먹고, 사우나도 다니고 하며 우정을 키워야 한다. 연구실 문화가 경쟁적이기만 하면, 이런 피드백을 주고받기 어렵다. 서로 돕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지도교수의 몫이기도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초고를 읽어주면, 나중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이 기꺼이 읽어줄 것이다.

동료의 피드백을 받을 때는 방어적이 되지 말자.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돼요”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은 “아, 정말요?”라고 받아들이자. 그 사람이 이해 못 했다면, 리뷰어도 이해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든 피드백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경청하고, 왜 그런 피드백이 나왔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