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독일의 신경해부학자 코르비니안 브로드만(Korbinian Brodmann)은 인간 대뇌 피질을 세포의 형태와 배열만으로 52개의 영역으로 나누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포의 모양이 영역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브로드만의 지도는 100년이 넘도록 신경과학의 기본 좌표계로 사용되어왔고, 우리는 여전히 “브로드만 영역 17은 일차 시각 피질이다”라는 식으로 뇌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지도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남겨놓았다. 세포의 형태가 영역마다 다르다면,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분자적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유전자 발현이 그 답의 핵심에 있다.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는 흔히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정보가 흐르는 과정으로만 기억된다. 그래서 유전자가 개체의 표현형, 즉 눈 색깔이나 키를 결정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센트럴 도그마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유전체를 가진 하나의 개체 안에서,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발현되느냐가 조직과 세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간세포가 간세포인 이유는 간에서 필요한 유전자들이 켜져 있기 때문이고, 뉴런이 뉴런인 이유는 뉴런에서 필요한 유전자들이 켜져 있기 때문이다. 발달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임신 10주의 태아 뇌에서 켜지는 유전자 세트와 출생 직후의 뇌에서 켜지는 유전자 세트는 다르고, 그 차이가 신경 생성에서 시냅스 형성으로, 시냅스 형성에서 수초화로 넘어가는 발달적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유전자 발현은 개체의 정체성뿐 아니라, 발달의 시간과 조직의 공간을 제공하는 좌표 체계인 셈이다.
인간 유전체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약 2만 개 있다. 이 유전자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특정 발달 시점에 특정 세포를 만들어내고, 그 세포들이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장기가 된다. 나는 이 네트워크가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이 연구를 하면서 나를 사로잡은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왜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초기 뇌 발달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가? PTEN은 가장 흔한 종양 억제 유전자 중 하나인데, 이 유전자에 유전 변이가 생기면 뇌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동반된다. CHD8은 대장암에서 반복적으로 변이가 발견되는 크로마틴 리모델러인데, 동시에 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 가장 자주 신생 유전 변이가 발생하는 유전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는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유전자에서 유전 변이가 발생하는데, 왜 그 결과는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하나의 표현형으로 귀결되는가? 유전적 원인은 수백 가지인데 임상적 결과는 유사하다면, 그 사이에 어떤 수렴의 논리가 있는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들을 따라간 기록이다. 나는 신경과학에서 유전체 기술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인간 사후 뇌 조직의 유전체, 전사체, 멀티오믹스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그리고 뇌 오가노이드와 CRISPR 스크리닝 같은 기능 유전체학 도구를 사용하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써왔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정리된 개념들과, 이 분야를 정의해온 핵심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교과서라기보다는 하나의 분야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따라가는 과학 저술에 가깝다. 2011년 예일 대학교의 세스탄 연구실이 인간 뇌의 시공간 전사체를 처음으로 매핑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단일 세포 아틀라스, 피질과 비-피질 영역의 세포 다양성, 유전자 네트워크의 기능적 수렴, 시냅스 단백질체의 진화, 뇌 오가노이드, 그리고 대규모 유전자 기능 스크리닝까지, 이 분야가 지난 15년 동안 걸어온 길을 따라간다.
이 책은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트는 독립된 주제를 다루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을 따른다. 벌크 전사체에서 단일 세포로, 단일 세포에서 세포 유형의 생물학으로, 세포 유형에서 유전자 네트워크의 수렴으로, 그리고 사후 조직의 한계를 넘어 오가노이드와 새로운 기술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Part 1. 인간 뇌 오믹스 연구의 시작. 마이크로어레이 시대에 시작된 인간 뇌 전사체 연구의 기원을 다룬다. Kang et al. (2011)의 시공간 전사체, Miller et al. (2014)의 BrainSpan 프로젝트, 그리고 유전자 공발현 네트워크 분석이 어떻게 뇌 발달의 분자적 지형도를 처음으로 그려냈는지를 살펴본다.
Part 2. 단일 세포 시대의 뇌 아틀라스. 단일 세포 RNA 시퀀싱 기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뇌 세포 아틀라스 프로젝트들을 다룬다. 발달 중인 뇌의 세포 지도, 성인 뇌의 3,000가지 이상의 세포 유형, 그리고 후성유전체와 3차원 유전체 구조를 통합한 멀티오믹스 연구를 소개한다.
Part 3. 뇌의 세포 유형. Part 2에서 밝혀진 세포 다양성을 유형별로 깊이 들여다본다. 방사 글리아에서 시작하는 신경 생성의 궤적, 흥분성 뉴런과 억제성 뉴런의 다양성, 성상세포와 미세아교세포와 희소돌기세포의 생물학, 뇌-혈관 장벽을 이루는 혈관 세포들, 그리고 소뇌, 시상, 시상하부, 선조체, 뇌간 등 비-피질 영역의 세포 다양성까지 각 세포 유형의 정체성과 기능을 탐구한다.
Part 4. 유전자의 기능적 수렴. 유전자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신경발달 질환의 유전적 구조를 이해한다.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유전 변이가 어떻게 소수의 공통 경로로 수렴하는지, 그 수렴이 뇌 발달의 어느 시점과 어떤 세포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표현형에 영향을 미치는 다면발현의 논리를 다룬다.
Part 5. 인간 뇌의 진화적 특성. 인간의 뇌가 다른 영장류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자 수준에서 비교한다. 인간 가속 영역(HAR), 극보존 요소(UCE), 시냅스 단백질체의 진화적 팽창, 시냅스 네오테니, 전이인자의 조절 요소화가 어떻게 인간 뇌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복잡성이 신경정신과적 조건의 분자적 기반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본다.
Part 6. 뇌 오가노이드와 어셈블로이드. 사후 조직의 한계를 넘어서는 줄기세포 기반 뇌 모델을 다룬다. 뇌 오가노이드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영역 특이적 오가노이드와 어셈블로이드, 오가노이드의 검증과 한계, 그리고 오가노이드의 미래를 소개한다.
Part 7. 새로운 모달리티, 새로운 스케일. 신경유전체학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들을 다룬다. 긴길이 시퀀싱이 밝혀낸 이소체의 세계, Perturb-seq를 이용한 유전자 기능의 대규모 해부, 그리고 오가노이드와 살아있는 뇌에서의 CRISPR 스크리닝까지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