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유전학 연구가 지난 20년간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일반 독자를 위해 정리한 것이다. 자폐를 가진 아이의 부모, 특수교육 교사, 자폐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유전학의 최전선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한 모든 사람을 위해 쓰였다.
자폐 연구의 역사는 빅데이터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규모의 연구가 가능했던 데에는 짐 사이먼즈와 SFARI 재단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수학자이자 투자자였던 사이먼즈가 세운 이 재단은 정부 연구비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규모의 코호트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공개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한국 등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이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고, 서로의 발견을 재현하며, 하나의 협력적 지식 체계를 쌓아왔다. 나도 이 협업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컨소시엄에서 연구할 때 매주 줌 회의가 있었는데, 초기에는 화면 없이 전화로만 연결되는 줌이었다. 분석 결과를 준비하고, 전 세계 수십 명의 과학자들 앞에서 논의하는 과정은 즐겁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계속 모여서,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이 연구의 본질이었다. 수천 가족의 유전체를 읽고, 수만 명의 데이터를 모으고, 수십만 개의 세포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과정은 어느 한 연구팀의 성과가 아니라 국제적 협업의 결과다. 이 책은 그 여정을 따라간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자폐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유병률은 약 1~2%다. 50명 중 1명이다. 학교의 한 학급, 아파트의 한 동, 직장의 한 부서에 자폐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유전학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자폐의 유전적 위험에 기여하는 변이가 특정 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구 전체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루어진 유전체 연구들과 코호트 연구들을 통해 보자면, 누구의 자녀든 자폐를 가질 생물학적 확률이 존재한다. 자폐는 어떤 가족에게 닥치는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적 다양성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발달 경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심해지고 있다. 이 혐오는 무지에서 온다. 자폐가 무엇인지, 왜 발생하는지,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혐오가 된다. 이 책이 그 무지의 일부라도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자폐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 옆에 있고,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과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역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학술지에 출판되고 엄격한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과학에서 하나의 발견이 의미를 가지려면 다른 연구팀이, 다른 데이터로, 같은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을 재현(replication)이라 부른다. 처음 보고된 발견은 흥미롭지만, 재현되지 않은 발견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연구들은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재현된 결과를 중심으로 선별했다. 한 편의 논문이 보고한 결과가 다른 코호트에서, 다른 나라에서, 다른 방법으로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이 책에 포함시켰다. 과학이 느리고 조심스러운 이유는 이 재현의 과정 때문이며, 그 느림이 결론의 신뢰를 만든다. 각 장의 끝에 인용한 논문들의 목록을 실은 것도 같은 이유다. 관심 있는 독자가 원문을 직접 찾아보고, 이 책의 서술이 어떤 근거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문 용어는 처음 등장할 때마다 풀어서 설명했고, 비유를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