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유전학의 대규모 코호트가 거의 모두 유럽계 인구를 중심으로 구축되어왔다는 사실은 앞 장에서 짚었다. SSC, SPARK, MSSNG의 참여자 대다수가 유럽계 혈통이었고, 동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인구의 대표성은 극히 낮았다. 자폐 유전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유전체학 전반의 구조적 편향이었지만, 그 결과는 구체적이다. 유럽계 인구에서 발견된 유전적 연관이 다른 인구에서도 재현되는지는 검증해야 하고, 특정 인구에서만 빈도가 높은 유전 변이는 유럽계 중심의 연구에서 원천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이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가 한국 자폐스펙트럼장애 연구 컨소시엄(Korean Autism Research Consortium, K-ARC)이다. K-ARC가 시작된 배경에는 앞 장에서 다룬 ASC의 경험이 있다. ASC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세계적 수준의 자폐 연구가 개별 연구실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국경을 넘어 데이터를 공유하고 함께 분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자폐 유전학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한국의 연구가 처음부터 이 국제 협업 네트워크에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과학이 이루어지고 있고,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기여할 길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K-ARC에서 노력한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에서 자폐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에는 SFARI 재단이라는 민간 자선 기관이 수십 년에 걸쳐 수조 원 규모의 자금을 자폐 기초과학에 투자해왔다. 한국에는 이에 견줄 만한 대규모 연구 후원 기관이 없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는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 특히 암이나 치매처럼 대상 인구가 크고 약물 개발의 경제적 유인이 큰 질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자폐는 유병률이 1~2%로 적지 않지만, 원인이 수백 가지로 이질적이고 단일 약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연구개발 틀에 잘 맞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자폐 유전학에 들어간 정부 투자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K-ARC는 국내 연구자들이 개인의 노력을 조금씩 모아 만든 협력체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유희정 교수가 임상 측면을 이끌면서, 자폐 가족들과 신뢰 관계를 쌓고 표현형 데이터를 축적하는 작업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코호트를 만드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족들이 연구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아이의 발달력과 진단 정보를 공유하고, 유전체 시료를 제공하기까지는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 K-ARC의 속도는 SFARI 자원을 가진 미국 코호트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처음부터 국제 연구와 직접 비교 가능한 수준의 정확성과 표준화를 지향했다. 같은 시퀀싱 기술, 같은 분석 파이프라인, 같은 통계 기준을 적용해, 한국에서 나온 결과가 SSC나 SPARK의 결과와 같은 틀 안에서 해석되도록 설계했다.
K-ARC는 한국의 자폐스펙트럼장애 가족들의 유전체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국제 코호트와 통합 분석을 수행해 교차 인구 보편성을 검증한다. 한국 코호트는 2022년에 242개 단발성 가족(813명)의 전장 유전체 시퀀싱으로 시작해, 이후 634가족(2,104명), 1,400가족(3,730명)으로 성장했고, 가장 최근의 통합 분석에서는 SSC와 SPARK를 포함한 78,685명 규모의 국제 통합 분석에 핵심 구성 요소로 참여했다. 코호트의 성장 자체가 연구 역량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비코딩 변이의 탐색에서 출발해, 전장 유전체 수준의 성차 분석, 반복 서열 확장, 비코딩 변이 연관 검정 도구 개발, 가족 내 표현형 편차를 활용한 유전자 발견까지, 방법론의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K-ARC의 첫 번째 대규모 연구는 비코딩 신생변이와 크로마틴 상호작용의 관계를 탐구했다. Kim et al. (2022) 연구는 한국의 242개 단발성 가족(813명)을 대상으로 전장 유전체 시퀀싱을 수행하고, 비코딩 영역에서 발생한 신생변이가 3차원 크로마틴 상호작용을 거쳐 자폐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교란하는지 분석했다. 인핸서-프로모터 크로마틴 상호작용이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인핸서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프로모터와 3차원 공간에서 접촉해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기전을 가리킨다. DNA가 세포핵 안에서 실타래처럼 접혀 있어, 선형 유전체상에서 수십만 염기쌍 떨어진 두 영역이 3차원에서는 바로 옆에 놓이기도 하며, 이 접촉이 유전자 발현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연구의 핵심 발견은 두 가지다. 첫째, 비코딩 신생변이 가운데 크로마틴 상호작용을 교란하는 변이가 자폐 진단군에서 유의하게 많이 관찰되었다. 둘째, 이 효과는 지능지수(IQ)가 낮은 하위군에서 특히 강했다. 결과는 SSC의 1,902가족과 MSSNG의 517명에서 독립적으로 재현되었고, 한국 가족에서 채취한 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hiPSC, 피부나 혈액 세포를 배아 상태처럼 되돌린 세포)에서 기능 검증도 함께 수행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파트 6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 연구의 의미는 두 측면에 있다. 하나는 한국인 자폐 전장 유전체 시퀀싱 데이터를 처음으로 대규모로 생산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코딩 유전 변이가 자폐에 기여하는 기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K-ARC의 비코딩 변이 연구는 파트 3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코호트가 성장하면서 연구 질문의 범위도 넓어졌다. Kim et al. (2024) 연구는 한국의 673개 가족(2,255명)을 포함한 전장 유전체 시퀀싱 분석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성차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폐 여성에게서 신생 단백질 절단 변이(protein-truncating variant)가 남성보다 유의하게 많이 관찰된다는 점, 그리고 자폐 아동의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높은 양적유전 부담을 견딘다는 점, 곧 여성이 같은 수준의 유전적 위험을 안고도 자폐 표현형이 잘 나타나지 않는 여성 보호 효과(female protective effect)를 지지하는 결과였다. 이 연구의 중요한 기여는 이러한 성차가 유럽계 인구에서만 관찰되지 않고 한국 코호트에서도 독립적으로 재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데 있다. 유전학에서 발견의 가치는 다른 인구에서의 재현으로 배가되며, K-ARC는 동아시아 인구에서의 재현 코호트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에 발표된 다른 연구는 단축 반복(short tandem repeat, STR) 확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Kim et al. (2024) 연구는 한국의 634가족(2,104명)에서 희귀 STR 확장이 대뇌 피질 바깥쪽 층(2/3층)에 위치하는 흥분성 뉴런의 유전자와 그 유전자 근처의 조절 영역에 빈번하게 나타나며, 사회적 장해 증가와 적응 행동 저하에 연관된다고 보고했다. Trost et al. (2020) 연구가 MSSNG 코호트에서 보고한 유럽계 결과를 한국 코호트에서 독립적으로 재현한 셈이며, STR 확장이 인구를 가리지 않는 교차 인종 위험 인자임을 보여주었다.
K-ARC 연구의 일관된 전략은 한국 코호트에서 발견한 결과를 국제 코호트에서 재현하거나, 국제 코호트와 통합 분석을 수행하는 데 있다. 이 전략의 정점은 Kim et al. (2025) 연구에서 드러난다. 이 연구는 한국, SSC, SPARK를 포함한 78,685명(21,735가족, 자폐 진단군 24,050명)의 통합 데이터에서, 가족 내 표준화 편차(within-family standardized deviation, WFSD)라는 새로운 표현형 측정 방법을 도입했다. 기존 자폐 유전학 연구가 진단군과 비교군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거나 절대적 표현형 점수를 사용했다면, WFSD는 같은 가족 안에서 자폐 진단을 받은 참여자의 표현형이 가족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잰다. 가족의 유전적·환경적 배경을 자동으로 통제하는 셈이다. 이 방법으로 18개의 새로운 자폐 위험 유전자를 발견했고, 11개 유전자에서 유전 변이의 위치에 따라 표현형이 달라지는 유전자 내 이질성(within-gene heterogeneity)을 관찰했다.
Lee et al. (2026) 연구는 K-ARC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그동안의 자폐 유전학은 대체로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하나의 강력한 변이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연구는 시각을 바꿔 한 사람이 두 개의 유전자에 동시에 희귀 변이를 가지는 공동 발생(co-occurrence) 양상을 살폈다. 동아시아(K-ARC)와 유럽계(SSC, SPARK)를 포함한 52,670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특정 유전자 쌍에서 희귀 변이의 공동 발생이 자폐 진단군에서 유의하게 빈번했다(동아시아 오즈비 8.97, 유럽계 7.65). 개별 유전자 수준에서는 효과가 보이지 않던 유전된 희귀 변이가, 두 유전자의 조합으로 보면 강한 위험 요인으로 드러났다. 발견된 162개의 유전자 쌍은 세포골격(cytoskeletal) 경로, 그중에서도 액틴 결합과 미세소관 결합으로 수렴했고, 이는 신생변이가 수렴하는 크로마틴/전사 조절 경로와는 구별되는 새 경로다. 실험적으로도 TIAM2와 WDR19라는 유전자 쌍을 동시에 억제하자 섬모(cilia) 형성이 크게 교란되었지만, 각각을 단독으로 억제했을 때는 경미한 효과만 나타나 유전자 쌍의 시너지 효과가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자폐의 유전적 위험이 단일 변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변이의 조합으로도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유전된 변이의 “잃어버린 유전율(missing heritability)“을 설명하는 한 갈래를 제시한다.
242가족에서 시작해 78,685명 통합 분석에 이르기까지, K-ARC의 궤적은 비유럽계 코호트가 세계 자폐 유전학 연구에 기여하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다. 한국 특이적 발견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한국 코호트의 데이터를 국제 데이터와 함께 분석해 교차 인종 보편성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설계했다. 동시에 비코딩 변이에 대한 꾸준한 강조와 방법론 도구 개발(CWAS-Plus, WFSD)은 K-ARC가 단순한 재현 코호트를 넘어 독자적인 과학적 기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K-ARC의 의미는 한국에도 자폐 유전체 코호트가 생겼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진료 체계, 교육 제도, 가족 돌봄 방식, 언어와 문화 안에서 수집된 자료가 있어야 한국 가족에게 맞는 설명이 가능하다. 부모는 해외 논문에서 나온 수치를 그대로 자기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늘 궁금해하는데, 지역 코호트는 그 질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준다. 당사자에게는 한국어로 설명되고 한국의 서비스와 연결되는 연구가 필요하다. 교사에게는 코호트 연구가 교실과 멀리 떨어진 실험실의 일이 아니라, 진단과 지원의 기준을 조금씩 바꾸는 기반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 코호트의 과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가족과 학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Lee, H., Ko, K., Kim, S., Lee, G. H., Kim, S. W., Lee, J., … & An, J.-Y. (2026). Co-occurrence of rare variants implicates gene pairs in cytoskeletal pathways and is associated with increased severity in autism spectrum disorder. Genome Biology. doi:10.1186/s13059-026-04041-x
Kim, S., Trost, B., Engchuan, W., Nguyen, C. Q., Wilfert, A. B., Backstrom, I., … & An, J.-Y. (2022). Noncoding de novo mutations in chromatin interactions are implicated in autism spectrum disorder. Molecular Psychiatry, 27(11), 4680-4694. doi:10.1038/s41380-022-01697-2
Kim, S. W., Lee, H., Song, D. Y., Lee, G. H., Ji, J., Park, J. W., … & An, J.-Y. (2024). Whole-genome sequencing of autism spectrum disorder in a Korean cohort reveals sex-specific differences in familial transmission. Genome Medicine, 16(1), 85. doi:10.1186/s13073-024-01385-6
Kim, J. H., Koh, I. G., Lee, H., Lee, G. H., Song, D. Y., Kim, S. W., … & An, J.-Y. (2024). Short tandem repeat expansions in cortical layer-specific genes implicate in phenotypic severity and adaptability of autism spectrum disorder. 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s, 78(10), 598-607. doi:10.1111/pcn.13676
Kim, Y., Jeong, M., Koh, I. G., Kim, C., Lee, H., Kim, J. H., … & An, J.-Y. (2024). CWAS-Plus: An integrative framework for category-wide association study of noncoding variants. Briefings in Bioinformatics, 25(4), bbae358. doi:10.1093/bib/bbae323
Kim, S. W., Lee, H., Song, D. Y., Lee, G. H., Han, J. H., Lee, J. W., … & An, J.-Y. (2025). Evaluation of familial phenotype deviation improves de novo variant-enriched gene discovery in autism spectrum disorder. Genome Medicine, 17(1), 12. doi:10.1186/s13073-025-01532-7
Trost, B., Engchuan, W., Nguyen, C. M., Thiruvahindrapuram, B., Dolzhenko, E., Backstrom, I., … & Scherer, S. W. (2020). Genome-wide detection of tandem DNA repeats that are expanded in autism. Nature, 586(7827), 80-86. doi:10.1038/s41586-020-257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