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넓은 자폐 표현형과 연속성의 문제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받은 아이의 부모를 만나보면, 부모 중 한 명 혹은 두 명 모두에게서 진단 기준에는 미치지 않는 자폐적 특성의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회적 상황에서의 어색함, 대화에서 실용적 언어를 쓰는 데서 오는 어려움, 특정 관심사에 대한 강한 몰두,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 같은 특성이다. Piven et al. (1994) 연구는 이런 현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사례로, 자폐 아동의 부모에게서 사회적 무관심(다른 사람과의 교류에 관심이 낮은 상태), 경직성(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성향), 그리고 대화에서 상대방의 맥락을 읽기 어려운 언어 사용이 일반 인구의 부모보다 눈에 띄게 자주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이후 진단 역치 이하의 이런 자폐적 특성은 “넓은 자폐 표현형(Broader Autism Phenotype, BAP)“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BAP 개념이 중요한 까닭은 자폐의 유전적 구조에 관해 의미 있는 함의를 담고 있어서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순전히 산발적인 사건, 이를테면 신생변이만으로 생긴다면 부모에게서 자폐적 특성이 높게 관찰될 이유가 없다. 부모의 BAP가 높다는 사실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유전적 위험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부모에게서 유전되고, 부모는 진단 역치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그 유전적 부담을 짊어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 넓게 보면 자폐와 연관된 유전적 요인은 자폐 당사자에게만 있지 않고 정도의 차이를 두고 우리 모두에게 분포한다고 볼 수 있다. 자폐의 유전적 구조가 단일 유전자의 이분법적 효과가 아니라, 여러 유전적 요인이 합산되는 양적유전 모형에 더 가깝다는 간접 증거인 셈이다. 양적유전 개념은 13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BAP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BAP를 체계적으로 측정하려고 그동안 여러 도구가 개발되어왔는데, 각 도구가 포착하는 특성의 범위와 정밀도가 다르다. 도구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 까닭은,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BAP의 유병률 추정치와 누구에게서 BAP가 관찰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BAP 측정 도구는 넓은 자폐 표현형 설문지(Broad Autism Phenotype Questionnaire, BAPQ)다 (Hurley et al. 2007). 36개 문항으로 사회적 무관심, 경직성, 실용적 언어 어려움이라는 세 가지 하위 척도를 측정한다. 자기보고식이라 대규모 인구를 대상으로 비용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민감도(실제 BAP인 사람을 BAP로 판별하는 비율)와 특이도(실제 BAP가 아닌 사람을 정확히 걸러내는 비율)가 70%를 넘는다. 또 다른 도구인 자폐 지수(Autism Quotient, AQ)는 50개 문항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의사소통과 사회적 기술 하위 척도가 BAP를 가장 잘 구분한다고 Bishop et al. (2008) 연구가 보고했다. AQ는 본래 자폐 진단이 아닌 일반 인구에서의 자폐적 특성 분포를 재려고 만들어진 도구로, 차원적 관점을 반영한다. 사회적 반응성 척도(Social Responsiveness Scale, SRS)는 65개 문항으로 타인이 보고하는 방식(informant-report)의 도구인데, 자폐적 특성을 하나의 연속적 점수로 요약하는 특성이 있다.

또 다른 도구인 CC-A(Communication Checklist-Adult)를 사용한 Whitehouse et al. (2010) 연구는 BAP 내부에도 하위유형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자폐 진단군 69명, 부모 238명, 대조군 187명을 분석한 결과, BAP를 보이는 부모 대다수는 실용적 언어 능력과 사회적 참여라는 두 하위 척도 중 하나에서만 점수가 낮았다. 두 영역 모두에서 어려움을 보이는 부모는 드물었다. 특히 사회적 의사소통의 수동성이 부모 BAP에 가장 민감한 지표로 나타나, BAP가 단일한 상태가 아니라 내부에 질적으로 다른 유형을 포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도구들 사이의 차이가 연구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부모 BAP의 성차 문제다. BAPQ를 쓴 Losh et al. (2008) 연구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서 BAP가 높다고 보고된 반면, SRS를 쓴 De la Marche et al. (2012) 연구에서는 아버지에서만 BAP가 높다고 보고되었다. 이 불일치는 도구가 측정하는 특성의 차이에서 온다. BAPQ의 “사회적 무관심” 하위 척도는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편함을 측정하는데, 이 불편함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서 관찰된다. SRS는 사회적 반응성 전반을 측정하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기본적으로 높은 사회적 반응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 어머니의 BAP가 SRS에서는 가려진다.

그렇다면 실제로 BAP를 가진 부모는 얼마나 될까? 1,692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Sasson et al. (2013) 규준 연구에 따르면 자폐 아동의 부모 중 14~23%가 BAP 기준을 충족한 반면, 일반 인구에서는 5~9%만 기준을 충족했다. 더 눈에 띄는 사실은 BAP 수준이 가족 유형에 따라 체계적으로 달라진다는 데 있다 (Losh et al. 2008). 한 가족에서 두 명 이상의 자폐 아동이 있는 다발성(multiplex) 가족의 부모가 단발성(simplex) 가족의 부모보다 BAP 수준이 높았고, 단발성 가족의 부모는 일반 인구보다 높았다. 이 등급화된 패턴(multiplex > simplex > general population)은 유전적 부담의 가족 내 분포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영아기 형제 연구도 BAP의 유전적 기반을 뒷받침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의 영아기 동생을 전향적으로 추적한 연구에서, 12개월 시점에 자폐적 특성이 높은 군집이 관찰되었다. 여기서 ‘고위험’이란 형이나 누나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아이를 말하는데, 이 고위험 영아 170명 중 19.4%가 자폐적 특성이 높은 군집에 속한 반면, 가족 내 자폐 이력이 없는 대조군 영아 90명에서는 4.5%만이 같은 군집에 속했다 (Georgiades et al. 2013). 이 비율 차이는 유전적 위험이 같은 가족 안에서 진단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 수준에서 일찍부터 표현됨을 보여준다.

연속인가, 범주인가 — BAP가 던지는 질문

BAP 연구가 쌓이면서, 자폐적 특성이 인구 전체에 연속적으로 분포한다는 관점이 힘을 얻었다. 일반 인구에서 자폐적 특성을 재면 정규 분포에 가까운 연속적 분포가 나타나고, 가족 안에서도 특성 수준이 유전적 공유 정도에 비례해 등급화된다. 스웨덴 인구 200만 명의 가족 자료를 분석한 Sandin et al. (2014) 연구는 일란성 쌍둥이의 상대 재발 위험도(relative recurrence risk, RR — 일반 인구 대비 해당 가족 관계에서 자폐가 다시 나타날 확률이 몇 배나 높은지를 가리키는 수치)가 153배, 이란성 쌍둥이 8.2배, 완전 형제 10.3배, 이복 형제 약 3배, 사촌 2.0배라고 보고했다. 이 결과는 유전적 공유 비율에 비례하는 전형적인 양적유전 패턴과 맞아떨어진다.

모든 자폐가 이 연속적 모형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CHD8이나 SHANK3 같은 유전자에 효과가 매우 큰 신생변이가 생기면(이런 변이를 가진 사람 대부분에서 자폐가 나타나므로 침투도가 높다고 부른다) 부모의 BAP는 반드시 높지 않다. 신생변이는 부모에게 없던 변이가 새로 생겨난 사례라서다. Constantino et al. (2013) 연구는 이복 형제의 자폐 재발률이 약 10%로 일반 인구(약 1%)와 완전 형제(약 20%)의 중간에 자리한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양적유전 모형을 지지하는 동시에 자폐스펙트럼장애 안에 양적유전 연속체의 극단에 자리한 사례와 단일 유전자의 강한 효과로 발생하는 사례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이 공존이 BAP 연구의 가치와 한계를 함께 규정한다. BAP 연구는 자폐의 유전적 위험이 연속적이고 양적유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자폐스펙트럼장애 안에 BAP 모형으로 포착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넓은 자폐 표현형이라는 개념은 자폐를 진단의 경계 너머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그 확장이 하나의 연속적인 실체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원인을 가진 상태들이 표현형 수준에서 겹쳐 보이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다.

이 장을 삶으로 옮길 때

넓은 자폐 표현형은 가족을 탓하거나 친척을 가볍게 진단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이 개념은 자폐와 관련된 특성이 인구 전체에 연속적으로 분포한다는 연구 언어이며, 가족 안에서 비슷한 소통 방식이나 감각 특성이 함께 보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어떤 특성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녀의 진단을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당사자에게도 이 개념은 “나는 진단명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 준다. 교사는 넓은 표현형을 학생에게 붙이는 별명처럼 쓰지 말고, 수업 방식과 환경 조정을 생각하는 단서로만 사용해야 한다. 결국 이 장은 경계를 넓히되, 사람의 삶을 연구 개념 안에 가두지 않는 태도를 요구한다.

참고문헌

Bishop, D. V., Maybery, M., Maley, A., Wong, D., Hill, W., & Hallmayer, J. (2008). Using self-report to identify the broad phenotype in parents of children with autistic spectrum disorders.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45(8), 1431-1436. doi:10.1111/j.1469-7610.2007.01817.x

Constantino, J. N., Zhang, Y., Frazier, T., Abbacchi, A. M., & Law, P. (2013). Autism recurrence in half siblings: Strong support for genetic mechanisms of transmission in ASD. Molecular Psychiatry, 18(2), 137-138. doi:10.1038/mp.2012.9

De la Marche, W., Noens, I., Steyaert, J., Scholte, E., & Warreyn, P. (2012). Quantitative autism traits in first-degree relatives. Autism, 16(3), 247-260. doi:10.1177/1362361311421775

Gaugler, T., Klei, L., Sanders, S. J., Bodea, C. A., Goldberg, A. P., Lee, A. B., … & Buxbaum, J. D. (2014). Most genetic risk for autism resides with common variation. Nature Genetics, 46(8), 881-885. doi:10.1038/ng.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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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son, N. J., Lam, K. S. L., Childress, D., Parlier, M., Daniels, J. L., & Piven, J. (2013). The Broad Autism Phenotype Questionnaire: Prevalence and diagnostic classification. Autism Research, 6(2), 134-143. doi:10.1002/aur.1280

Whitehouse, A. J. O., Coon, H., Miller, J., Salisbury, B., & Bishop, D. V. M. (2010). Narrowing the broader autism phenotype: A study using the Communication Checklist-Adult Version (CC-A). Autism, 14(6), 559-574. doi:10.1177/136236131038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