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에서 진단이란 어떤 상태를 다른 상태와 구분하는 경계를 긋는 행위다. 혈당이 얼마 이상이면 당뇨병이고, 혈압이 얼마 이상이면 고혈압이다. 이 경계는 물론 인위적이다. 혈당 125와 126 사이에 생물학적 절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계선이 작동하는 이유는, 해당 수치 이상에서 합병증의 위험이 의미 있게 증가한다는 역학적 근거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에서도 경계를 긋는 행위가 필요하지만, 그 경계의 성격은 혈당이나 혈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에는 연속적인 수치로 환원할 수 있는 단일 생체지표가 없고, 진단은 전적으로 행동 관찰과 발달력에 의존한다.
DSM-5가 정의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은 두 가지 핵심 영역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지속적인 결함이고, 둘째는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관심, 또는 활동의 패턴이다. 두 영역 모두에서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증상이 초기 발달 시기에 나타나야 하고, 사회적, 직업적,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손상을 초래해야 한다. 이 기준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사회적 의사소통의 결함이란, 대화에서 상대방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상대방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기 어렵거나, 또래와의 우정을 형성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보이는 것이다.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란, 특정 주제(예: 기차 시간표, 공룡, 날씨 패턴)에 대한 매우 강렬하고 좁은 관심, 일상의 사소한 변화(등교 경로가 바뀌거나 식탁 배치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강한 저항, 물체를 줄 세우거나 손을 반복적으로 흔드는 행동 등을 포함한다.
Chapter 1에서 ADOS와 ADI-R이라는 황금 표준 도구를 소개했다. 이 도구들은 높은 수준의 표준화와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진단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임상가들이 자폐 진단을 내릴 때 얼마나 확신하는지를 분석한 연구(Rødgaard et al. 2024)에 따르면, 증상이 뚜렷할수록 임상가의 확신도 높았다. 증상이 뚜렷한 경우에는 진단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경계에 위치한 사례, 즉 자폐 특성이 있지만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지 불분명한 경우에는 임상가 간의 일치도가 낮아질 수 있다.
경계 사례에서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 특히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아이에서는 사회적 어려움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아이들은 규칙을 학습하여 사회적 상황에 맞추는 전략을 일찍부터 발달시키기 때문이다. “늦게 진단받은 여성들”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성의 경우에도 사회적 마스킹(social camouflaging), 즉 자신의 사회적 어려움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여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이 진단을 가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성과 소녀들에서의 과소진단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는데(Happe and Frith 2020), 여성의 자폐 표현이 남성과 질적으로 다를 수 있으며, 현재의 진단 도구가 이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논의한다.
진단 도구 자체의 한계도 있다. ADOS는 약 40~60분의 관찰에 기반하는데, 이 시간 동안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이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을 완전히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 하는 상호작용은, 아이가 편안한 가정 환경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다를 수 있다. 일부 아이들은 구조화된 검사 상황에서 오히려 더 잘 수행하고, 일상의 비구조화된 상황에서 더 큰 어려움을 보인다. 이런 이유로 ADOS 관찰만으로는 부족하고, ADI-R을 통한 발달력 조사가 보완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아이의 연령과 언어 수준에 따라 적합한 ADOS 모듈을 선택해야 하며, 성인을 위한 평가는 아동용 도구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자폐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틀이 존재한다. 하나는 범주적(categorical) 접근이다. 이 관점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있거나 없는 것이다. DSM의 진단 체계는 기본적으로 이 범주적 틀에 기반한다. 다른 하나는 차원적(dimensional) 접근이다. 이 관점에서 자폐적 특성은 인구 전체에 걸쳐 연속적으로 분포하며,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진단받는 사람들은 이 연속 분포의 한쪽 극단에 위치한 것일 뿐이다. 키가 연속적으로 분포하면서도 매우 큰 사람과 매우 작은 사람이 있듯이, 자폐적 특성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고 진단은 임의의 절단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두 관점은 각각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범주적 관점을 지지하는 증거는 주로 침투도(penetrance)가 높은 유전 변이에서 온다. 침투도란 특정 유전 변이를 가진 사람이 실제로 해당 표현형을 보이는 비율을 말한다. 침투도가 높다는 것은 그 변이가 있으면 거의 확실하게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Part 3에서 다루겠지만, CHD8이나 SHANK3 같은 유전자에 기능 상실을 초래하는 신생변이가 발생하면 높은 확률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자폐스펙트럼장애는 특정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야기되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상태에 가깝다. 반면 차원적 관점을 지지하는 증거는 일반 인구에서의 자폐적 특성 분포에서 온다. 사회적 반응성 척도(SRS)나 자폐 지수(AQ) 같은 도구로 일반 인구의 자폐적 특성을 측정하면, 이 특성은 정규 분포에 가까운 연속적인 분포를 보여준다. 또한 Gaugler et al. (2014) 연구가 보여주듯이, 자폐의 유전적 위험의 대부분은 수천 개의 일반 유전 변이들의 합산으로 설명되며, 이러한 양적유전 구조는 연속적 분포를 만들어낸다.
현실은 아마도 이 두 관점 모두를 필요로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 범주 안에는 단일 유전자의 강한 효과로 인해 발생하는 사례와, 수천 개의 약한 유전적 효과가 누적되어 역치를 넘는 사례가 공존하고 있다. 전자는 범주적 모델에 더 잘 부합하고, 후자는 차원적 모델에 더 잘 부합한다. 문제는 이 두 유형이 같은 진단명 아래에 섞여 있을 때 발생한다. 연구자가 자폐스펙트럼장애 코호트를 모집하면 이 이질적인 집단이 하나의 표본에 들어오게 되고, 집단 수준의 분석에서 개별적 차이가 평균 속에 묻혀버린다.
이 두 관점을 구체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다. Mottron and Gagnon (2023) 연구는 ‘원형적 자폐(prototypical autism)‘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2~5세 사이에 사회적 정보에 대한 처리 편향의 부재, 복잡한 비사회적 정보에 대한 강한 관심, 온전한 운동 발달과 대비되는 구어 발달의 정체 등 질적으로 구분 가능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은 전체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며, 가족 내 집적이 있고, 유해한 신생변이 없이도 나타난다. 이후 발표된 연구(Mottron et al. 2025)는 이 원형적 자폐를 쌍둥이, 왼손잡이, 둔위(역자, 逆子) 출산과 같은 범주에 놓았다. 이들은 모두 연속적인 유전적 소인으로부터 비연속적인 표현형이 발생하는 ‘비대칭 발달 분기(asymmetric developmental bifurcation)‘의 사례라는 것이다. 왼손잡이의 빈도가 인구의 약 10%로 오랫동안 안정적이듯, 원형적 자폐의 빈도도 약 1%로 안정적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원형적 자폐는 범주적이다. 하지만 DSM-5가 포괄하는 넓은 자폐스펙트럼은 이 원형에서 벗어난 다양한 개인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확장된 집단에서의 자폐적 특성은 차원적으로 분포한다. 진단 기준이 넓어지면서 원형적 자폐와 비원형적 자폐가 한 범주에 혼합되는 현상이 바로 다음에 살펴볼 효과 크기 감소의 배경이기도 하다.
진단 기준의 너비가 연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 추측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관찰된 현상이다. Rodgaard et al. (2019) 연구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연구는 11개의 기존 메타분석(총 27,723명)을 재분석하여, 자폐스펙트럼장애 집단과 비자폐 집단 사이의 신경인지적 차이를 나타내는 효과 크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계적으로 감소해왔음을 보여주었다. 감정 인식(다른 사람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는 능력), 마음 이론(다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추론하는 능력), 계획 능력, 뇌파 반응(P3b 진폭), 뇌 크기 등 다섯 가지 측면에서 효과 크기의 감소가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효과 크기(effect size)란 두 집단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표준화된 수치다. 효과 크기가 크면 두 집단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뜻이고, 작으면 차이가 미미하다는 뜻이다. 2000년에서 2015년 사이에 효과 크기가 약 8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조현병 연구에서는 이러한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일반적인 방법론적 추세가 아니라 자폐 연구에 특이적인 현상이다.
이 결과의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진단 기준의 확대다. 초기 연구에서 모집된 대상은 캐너가 기술한 것에 가까운, 보다 심각한 형태의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과 비자폐 집단 사이의 차이는 뚜렷했다. 하지만 진단 기준이 넓어지면서 보다 경미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연구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집단 간 차이가 줄어들게 되었다. 연구 방법이 더 정교해진 것이 아니라, 연구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진단의 경계가 연구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에 이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조명하는 발견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진단받는 자폐와 늦은 나이에 진단받는 자폐가 유전적으로 다른 조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Zhang et al. 2025). 이 연구는 자폐의 양적유전 위험이 두 개의 서로 약하게 상관된 요인으로 나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기 진단과 연관된 요인은 운동 발달과 어휘 발달의 지연과 연결되었고, 늦은 진단과 연관된 요인은 ADHD, 우울, 자해와 훨씬 더 강한 유전적 겹침을 보였다. 진단 연령 자체도 약 11%의 유전율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같은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이름으로 진단받더라도, 어린 시절에 뚜렷한 발달 지연을 보이며 진단받는 것과 성인이 되어 정신건강 문제를 통해 진단에 이르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부분적으로 다른 경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단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단순히 임상적 질문을 넘어, 생물학적 이질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Part 4에서 이 이질성을 더 깊이 다룬다. 다음 장에서는 먼저 진단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넓은 자폐 표현형의 문제를 살펴본다.
References
Gaugler, T., Klei, L., Sanders, S. J., Bodea, C. A., Goldberg, A. P., Lee, A. B., … & Buxbaum, J. D. (2014). Most genetic risk for autism resides with common variation. Nature Genetics, 46(8), 881-885. doi:10.1038/ng.3039
Happé, F., & Frith, U. (2020). Annual Research Review: Looking back to look forward — changes in the concept of autism and implications for future research.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61(3), 218-232. doi:10.1111/jcpp.13176
Lord, C., Elsabbagh, M., Baird, G., & Veenstra-Vanderweele, J. (2018). Autism spectrum disorder. The Lancet, 392(10146), 508-520. doi:10.1016/S0140-6736(18)31129-2
Rødgaard, E.-M., Jensen, K., Vergnes, J.-N., Soulières, I., & Mottron, L. (2019). Temporal changes in effect sizes of studies comparing individuals with and without autism: A meta-analysis. JAMA Psychiatry, 76(11), 1124-1132. doi:10.1001/jamapsychiatry.2019.1956
Rødgaard, E.-M., et al. (2024). Clinical correlates of diagnostic certainty in autism spectrum disorder. Journal of Autism and Developmental Disorders. doi:10.1007/s10803-024-06289-9
Mottron, L., & Gagnon, D. (2023). Prototypical autism: New diagnostic criteria and asymmetrical bifurcation model. Acta Psychologica, 237, 103938. doi:10.1016/j.actpsy.2023.103938
Mottron, L., Lavigne-Champagne, A., Bernhardt, B., Dumas, G., Jacquemont, S., & Gagnon, D. (2025). Asymmetric developmental bifurcations in polarized environments: A new class of human variants, which may include autism. Molecular Psychiatry. doi:10.1038/s41380-025-03275-8
Zhang, H., et al. (2025). Polygenic and developmental profiles of autism differ by age at diagnosis. Nature. doi:10.1038/s41586-025-09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