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자폐 연구가 걸어온 길을 따라왔다. 캐너가 11명의 아이를 기술한 1943년의 임상 관찰에서 시작하여, 진단 개념의 변화, 대규모 코호트의 구축, 유전 변이의 발견, 이질성과 수렴의 논리, 분자적 기전의 해부, 치료를 향한 첫걸음, 그리고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현실까지. 이 여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주제를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첫 번째는 데이터의 힘과 한계다. 200가족의 엑솜에서 SCN2A 하나를 겨우 확인했던 것이 6만 명 규모에서 185개의 유전자로 늘었고, 248만 명의 코호트에서 아세트아미노펜 가설이 기각되었으며, 60만 개의 단일 세포에서 자폐 뇌의 세포 유형별 변화가 드러났다. 자폐 연구의 매 발견은 데이터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일어났다. 하지만 데이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337,423명의 유전체 데이터에서 자폐의 양적유전점수가 삶의 만족도와 연관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중요하지만, 그 발견이 자폐를 가진 한 사람의 오늘 하루를 바꾸지는 않는다. 데이터가 삶으로 번역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이질성과 수렴의 공존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유전적으로 매우 이질적이다. 수백 개의 유전자, 양적유전 구조, 비코딩 변이, 반복 서열, 환경적 요인까지 합치면 자폐의 원인은 사실상 무한하다. 하지만 이 이질성 안에 구조가 있다. 세 가지 경로의 수렴, 전사 조절 인자의 공유, 태아 중기의 시공간적 수렴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수렴은 치료 가능성과 연결된다. 유전적 원인이 1,000가지라 해도, 수렴 지점이 존재한다면 소수의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개입이 여러 원인에 걸쳐 효과를 보일 수 있다. 동시에, 이질성은 하나의 치료가 모든 자폐 당사자에게 효과를 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SCN2A의 기능 상실과 기능 획득이 정반대의 치료를 요구하듯, 정밀 의학은 이질성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유전체에서 삶까지의 거리다. 유전자 발견에서 기전 이해로, 기전 이해에서 치료 표적으로, 치료 표적에서 임상시험으로, 각 단계마다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린다. 이 시간 동안 자폐를 가진 사람들은 기다릴 수 없다. 진단 후 지원의 부재, 정신건강 서비스의 단절, 성인 서비스의 공백, 건강 격차, 가족의 소진은 유전체 데이터의 축적과 병행하여 지금 당장 다루어야 하는 문제다. 자폐를 가진 성인의 전체 사망률이 90% 높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학문적 관심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거리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한쪽 끝에는 시퀀싱 기계가 읽어낸 A, T, G, C의 긴 문자열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결과지를 들고 진료실을 나서는 가족이 있다. 한쪽 끝에는 수십만 세포의 전사체 지도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교실의 소음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아이가 있다. 한쪽 끝에는 형제 비교 연구의 위험비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임신 중 열이 나서 약을 먹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 과학이 삶으로 번역된다는 말은, 이 장면들 사이를 건너는 설명과 제도와 돌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네 번째는 다양성의 가치다. K-ARC에서 시작하여 국제 통합 분석에 참여하기까지의 여정은 인구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유럽계 코호트에서의 발견이 한국 코호트에서 재현되는 것은 보편성을 입증하고,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 코호트에서만 발견되는 유전자는 다양성이 없으면 놓칠 수밖에 없다. 인구 다양성뿐 아니라, 성별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남성 중심의 진단 도구와 연구 설계가 자폐를 가진 여성들의 수십 년에 걸친 진단 지연과 정신건강 위기에 기여해왔다는 사실은, 연구의 포용성이 곧 결과의 정확성과 직결된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자폐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은 신경다양성의 존중이다. 유전 변이가 뇌 발달의 다양한 경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 경로에 우열을 붙이는 것은 가치 판단이다. 동시에,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안, 우울, 사회적 고립, 건강 격차, 돌봄의 부담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폐 연구의 목표는 자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기결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Kim (2019) 연구가 보여주었듯이, 자기결정은 자폐 성인의 삶의 질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여섯 번째는 과학의 언어다. 과학자들은 말을 할 때 버릇이 하나 있다. “A는 A입니다”라고 웬만해서 말하지 않는다. “A는 A로 생각됩니다”라고 말하거나, “B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사실을 전달할 때 정확한 정보, 다차원적인 정보를 함께 전달하려 한다. 일반인들이 보았을 때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학이 확정적인 언어로 말하지 않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미덕이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여 확정적으로 말하는 순간, 정확성은 사라진다. “타이레놀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한 문장을 반박하려면, 형제 비교 연구의 설계, 교란변수의 개념, 양적유전의 구조, E값의 의미를 모두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 문장의 메시지는 이미 대중에게 전달된다. 선동적 언어의 힘은 단순성에 있고, 과학적 언어의 힘은 정확성에 있다. 이 비대칭이 과학 소통의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다.
가설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는 매력적이고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이 열광적인 축제가 끝나면, 텅 빈 공터에 남은 몇몇 연구자들은 그 뒤의 일을 한다. 처음 제안된 가설을 여러 번 실험하고, 반복하고, 지루한 일들을 한다. 단물이 빠진 가설은 대중에게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대학으로, 연구소로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 연구를 수행하고 전문가를 양성한다. 이 과정이 두꺼워질수록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폐 연구에서는 특히 당사자들과 가족들의 참여 덕분에 이 과정을 더 신중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고 결과다.
이 책이 다룬 80년의 연구는, 자폐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바꾸었다. 냉장고 어머니 가설에서 유전체 시퀀싱으로, 단일 유전자 모형에서 양적유전 구조로, 아동기에만 머무는 조건에서 평생의 조건으로. 하지만 이해의 깊이가 깊어진 만큼, 그 이해가 도달해야 할 삶의 영역도 넓어졌다. 유전 변이의 발견은 시작이었다. 그 발견이 진단의 정밀화로, 치료의 개인화로, 서비스의 적절화로, 그리고 결국 자폐를 가진 사람과 그 가족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연구가 만든 문장이 진료실의 설명이 되고, 교실의 지원 계획이 되고, 가족의 불안을 덜어주는 말이 될 때 비로소 데이터는 삶에 닿는다. 데이터에서 삶으로 옮겨 가는 일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연구의 질문과 생활의 질문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점이 남는다. 논문은 유전자, 세포, 위험비, 신뢰구간을 말하지만, 가족은 내일 학교에 무엇을 부탁해야 할지 묻고, 당사자는 내 삶을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다. 예비 부모는 위험이라는 단어가 공포로 번역되지 않기를 바라며, 형제자매는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자기 삶도 함께 지킬 방법을 찾는다. 교사는 진단명이나 유전자 결과가 아니라, 오늘 교실의 소음과 과제 방식과 친구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 고민한다. 이 질문들은 과학의 바깥에 있는 질문이 아니라, 과학이 결국 도달해야 할 자리다. 데이터에서 삶으로 간다는 말은 연구 결과를 더 크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덜 해로운 말과 더 실제적인 지원으로 바꾸는 일이다.
나는 우연히 자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군 복무 중 부상을 입고 한동안 장애를 경험했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 떠난 호주에서, 예상치 못하게 자폐 유전체 연구를 만났다. 내게 유전체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준 친구 Sarah Williams는 자폐를 가진 가족이 있었고, 실험을 가르쳐준 Kalpana 여사님의 아들도 자폐였다. 이 사람들 곁에서 자폐 연구가 단순히 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렇게 시작된 공부가 미국과 캐나다의 코호트 연구로 이어졌고, 한국에도 이런 연구 데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유희정 교수님과 IBS 김은준 단장님 덕분에 한국에서도 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두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읽고 배운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자폐 연구에 대한 정보가 아직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현재까지의 연구와 논문들을 가능한 한 쉬운 말로 풀어보려 했다. 연구에 참여해주신 가족들과 자폐를 가진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연구에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 결정이 없었다면 이 책에 담긴 발견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구의 여정을 함께 해준 분들에게도 감사한다. Stephan Sanders 교수님, Donna Werling 교수님, 김일빈 교수님, 김수휘 박사, 이혜지, 김유진, 고인경 연구원, 그리고 연구실을 거쳐간 많은 연구원들.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데이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날마다 한 줄의 지식을 더 얻는 연구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