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장에서 자폐 위험 유전자들이 시냅스, 크로마틴, 전사 조절이라는 세 경로로 수렴함을 보았다. 이 장에서는 수렴의 한 가지 구체적인 기전을 살펴본다. 서로 다른 전사 조절 인자(transcription factor)가 유전체의 같은 위치에 결합해 같은 유전자들을 조절한다는 발견이다.
전사 조절 인자란 DNA의 특정 서열에 달라붙어 인접한 유전자의 발현을 켜거나 끄는 단백질이다. 세포가 어떤 유전자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현장 감독관에 비유할 수 있다. 유전체에는 수천 개의 유전자가 있지만 한 세포에서 모든 유전자가 동시에 켜져 있지는 않고, 그 세포의 유형과 발달 시점에 맞는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켜진다. 이 선택을 수행하는 것이 전사 조절 인자다. 하나의 전사 조절 인자가 수천 개의 유전체 위치에 결합할 수 있고, 한 유전자는 여러 전사 조절 인자의 조절을 동시에 받는다.
자폐 위험 유전자 중에 전사 조절 인자를 만드는 유전자가 여럿 있다. ARID1B, BCL11A, FOXP1, TBR1, TCF7L2가 대표적이다. 이 다섯 유전자 각각에 기능 상실 변이가 생기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위험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 다섯 유전자는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만들고, 서로 다른 분자적 기전으로 작동한다. Darbandi et al. (2024) 연구는 이 다섯 전사 조절 인자가 유전체에서 결합하는 위치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인간 태아 뇌(임신 23주)와 마우스 배아 뇌에서 ChIP-seq(chromatin immunoprecipitation sequencing)라는 기술을 써서, 다섯 전사 조절 인자 각각이 유전체의 어느 위치에 결합하는지를 지도화했다. ChIP-seq는 특정 단백질이 DNA에 결합하는 모든 위치를 유전체 수준에서 포착하는 기술이다. 항체로 관심 단백질에 결합된 DNA 조각을 낚아채고, 그 DNA 조각을 시퀀싱해 유전체 위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결과를 보면, 다섯 전사 조절 인자 각각은 유전체의 수만 개 위치에 결합했다. 그런데 이 결합 위치들을 겹쳐보니, 다섯 전사 조절 인자가 모두 결합하는 공유 위치가 12,347개에 달했다. 이 공유 결합 부위는 대부분 유전자의 프로모터 근처, 즉 유전자의 시작 스위치 부근에 있었고, 발달 중인 뇌에서 열려 있는 크로마틴 영역(ATAC-seq로 확인)과 99% 겹쳤다. 특히 Satterstrom et al. (2020) 연구에서 확인된 102개의 자폐 위험 유전자 중 96개가 이 공유 결합 부위를 포함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풀어보자. ARID1B에 변이가 있는 참여자, FOXP1에 변이가 있는 참여자, TBR1에 변이가 있는 참여자는 서로 다른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세 유전자의 단백질 산물은 유전체의 같은 위치에서 같은 하류 유전자들을 조절하고 있다. 어떤 전사 조절 인자가 망가지든 영향을 받는 하류 유전자 세트가 상당 부분 동일하다. 비유하자면, 다섯 명의 다른 관리자가 같은 건물의 같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어떤 관리자가 빠져도 같은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다.
이 연구는 또한 다섯 전사 조절 인자 중 두 개(ARID1B와 TBR1)에 대해 CRISPRi라는 기술로 기능을 억제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CRISPRi(CRISPR interference)는 유전자를 파괴하지 않고 발현만 낮추는 기술이다. 그 결과, ARID1B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와 TBR1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나타나는 하류 유전자 발현 변화가 유사했고, 이 변화 패턴은 실제 자폐 진단군의 사후 뇌에서 관찰되는 유전자 발현 변화와 상관이 있었다. 유전자 수준의 증거와 기능적 증거가 수렴을 독립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전사 조절 인자의 수렴은 자폐 유전학에서 왜 그토록 많은 유전자가 유사한 표현형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하는 한 가지 기전이다.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위험 유전자가 있지만, 그중 상당수는 같은 조절 네트워크에 속해 있어서 어느 것이 교란되든 같은 하류 프로그램이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는 낙관적인 함의가 있다. 유전적 원인이 1,000가지라 하더라도, 수렴 지점이 존재한다면 그 지점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가 여러 유전적 원인에 걸쳐 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는 아직 가능성의 영역이며, 수렴 지점을 표적으로 한 치료가 실제로 효과를 보이는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전사 조절 인자의 수렴은 서로 다른 유전자가 같은 발달 프로그램의 일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master switch가 발견되었다는 식으로 읽으면 과학의 조심스러운 결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전사 조절은 세포 유형, 발달 시점, 주변 유전자 네트워크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복잡한 과정이다. 가족에게는 “많은 유전자가 결국 연결된다”는 설명이 도움이 되지만, 그 연결이 개인의 예후를 바로 말해 주지는 않는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조절 인자 몇 개의 결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장의 의미는 복잡한 유전적 원인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생물학적 문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Darbandi, S. F., An, J.-Y., Lim, K., Page, N. F., Liang, L., Young, D. M., … & Rubenstein, J. L. R. (2024). Five autism-associated transcriptional regulators target shared loci proximal to brain-expressed genes. Cell Reports, 43(3), 113891. doi:10.1016/j.celrep.2024.114329
Satterstrom, F. K., Kosmicki, J. A., Wang, J., Breen, M. S., De Rubeis, S., An, J.-Y., … & Buxbaum, J. D. (2020). Large-scale exome sequencing study implicates both developmental and functional changes in the neurobiology of autism. Cell, 180(3), 568-584. doi:10.1016/j.cell.2019.12.036